영어와 한국 정착에 대한 탈북민 여성들의 이야기

2019-04-06 09:17

통일부에 따르면 탈북민의 71% 여성입니다. 이번 “Voices from the North”에서는 명의 탈북민 여성들의 한국 정착과정과 과정에서 영어가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 들어보겠습니다. ― 편집자 .

지혜 (2011 탈북, 2011 한국 도착)

영어에 대한 첫 기억은 오늘날까지 저를 괴롭힙니다. 한국에 막 도착했을 때였고,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기대가 부풀던 시기였습니다. 하나원에서 나온 뒤 저는 바로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첫 수업 중 하나였는데, 반에서 영어 게임을 진행했습니다.

다른 학생들은 영어 단어를 다 아는데, 오직 저만 단어를 하나도 몰랐습니다. 배움에 대한 열정에 차 있었는데, 학생들의 답변과 조롱을 들으면서 몹시 굴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들은 제가 영어 단어를 모르는 이유가 북한에서 왔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결국 자퇴를 하게 되었고, 탈북민 대안학교에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곳의 선생님들과 교직원들은 탈북민 학생의 심정을 잘 이해하시니까요.

이제는 잊어버려야 한다는 거 잘 알고 있고 그렇게 제 자신에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인들과 어울릴 때마다 그 당시의 기억은 저를 수년간 끊임없이 괴롭혔습니다. 한국인들은 마치 제가 실패를 하거나 무식함을 드러내길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를 비웃고 남들에게 탈북민들이 얼마나 무식한지 이야기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이런 문제를 이겨낼 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탈북민에 대한 섣부른 재단은 대학에서 더 자주 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뭔가 잘 하면 “와, 너 북한에서 왔는데도 잘 하는구나”라고 하고, 뭔가 잘 못하면 “그래, 너는 북한에서 왔으니까 그런 거야”라거나 “너는 북한에서 왔으니까 이것을 모르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발 일부 탈북민들의 성공담이나 실패담을 가지고 모든 탈북민들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탈북민들을 재단하는 사람들을 재단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가 정말 잘 모르는 게 있기도 하니까요. 예를 들어, 한국에 왔을 때 저는 구급차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북한에는 구급차가 없습니다. 적어도 제가 자란 곳에는 없었습니다. 구급차에 대해 처음 알았을 때 그런 서비스가 있다는 사실이 정말 멋지다고 느꼈고, 제가 북한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구급차의 존재는 세상에 대한 저의 시야를 넓혀주었습니다. 언젠가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면, 저는 북한의 동포들에게 구급차와 같은 것들을 가져다 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을 조롱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필요를 이해하고 그들의 이해를 증진하도록 돕는 좋은 조언자이자 선생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탈북민을 재단하기 보다 함께 노력합시다. 가끔 우리의 무지에 대해 탈북민 개개인을 탓하기 보다 북한의 독재자들을 탓하는 분들을 만나면 놀랍습니다.

요즘 제가 몰두하고 있는 것은 영어공부입니다. 이 프로그램에 대해 알게 된 것은 몇 년 전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영어 없이도 한국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고 믿어서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드리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을 갈 시기가 되고 앞으로의 직장을 준비할 시기가 되자 어떻게 하면 저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지 더욱 깊게 생각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영어에 대해 절박해지게 되었고, 이제야 비로소 TNKR을 찾아 나서게 되어 이렇게 갑작스럽지만 간곡히 면담을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한국에서 계속 살 수도 있고, 해외로 나가서 살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만나는 외국인 선생님들의 장점 중 하나가 탈북민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무지를 비웃기 보다 북한의 독재자들과 북한의 시스템을 비판합니다.

선생님들은 저를 조롱하기 보다 저를 환대해주고, 어떻게든 배우려는 저의 목소리를 인내심을 갖고 들어줍니다. 발음과 영어문법이 엉망이라도, 그들은 시간을 들여 제가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줍니다. 선생님들께 참 죄송합니다. 제 영어실력이 형편없는데도, 제가 이해할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시며 수업준비를 해주십니다. 앞으로는 저도 수동적이지 않고 보다 능동적으로 공부를 해야겠습니다.

미나 (2014 탈북, 2014 한국 도착)

한국에 왔을 때 모든 게 새로웠습니다. 마치 어른이 된 뒤 타임머신에 타서 새로운 우주에 갓 태어난 아기로 도착한 느낌이었습니다. 가장 큰 충격은 인터넷이었습니다. 사방에 이렇게 많은 정보가 존재하는 게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정보에 접근하는 게 매우 어려웠고, 당연히 대부분의 책은 금지되어 있었으며 법적으로 정부가 승인한 책만 읽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컴퓨터를 키고 로그인만 하면 전 세계에 접근할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있고, 반대되는 의견과 책에 대한 비평가들의 분석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한국에 도착하자 마자 저는 영어광이 되었습니다. 하나원에 있을 때 하루는 영국인 목사님께서 한국인 사모님과 찾아와서 저희에게 영어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한국인인 사람이 영어를 하는 것을 본 건 처음이었습니다. 정말 멋진 경험이었습니다. 저는 영어를 공부할 방법을 찾아 나섰지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비용이 아니었고 어떻게 공부를 해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대학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특히 영어가 걱정이었습니다.

저의 새로운 친구 인터넷은 저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저는 하루에 10시간씩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북한에서 기본적인 영어는 배웠지만, 당연히 누군가와 대화를 할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기초만 배우는 데도 매일매일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화를 못해서 주변에서 기피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해야 할 노력이 있었습니다. 자신감이 조금 생기자 저는 가능한 한 모든 곳에서 공부했습니다. 학원, 온라인 강의, 외국인과의 만남, 언어교환, 장소와 시간을 가리지 않고 공부했습니다. 제가 만약 실패한다면, 적어도 많은 노력을 기울인 뒤에 맛보는 실패일 것입니다.

비록 영어가 조금 향상되긴 했지만 여전히 부족한 점 투성이였습니다. 친구들은 저와 잡담을 하고 싶어했고, 저의 이야기를 알고 싶어했으며, 북한에 대해 알고 싶어했으나, 그들에게 영어에 대한 저의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깊은 질문을 하는 것은 불편했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인 대화를 하기를 원합니다. 많은 남자들은 진지한 영어공부 보다는 저와 데이트하기를 원했습니다.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나름 진지하게 행동하더니 곧 사교적인 주제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섹시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진지한 공부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하면, 결국 안녕, 잘 있어 하다가 저는 사라져버립니다.

그래서 이 기관의 자원봉사자 선생님들은 제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왜 무료로, 그것도 아주 진지하게 탈북민들을 가르쳐주는지 저는 아직도 이해가 안 갑니다. 북한에 남아있는 언니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까 언니는 이 세상에 그렇게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고, 심지어 그들 대부분이 미국인이고 어떻게든 우리에게 영어를 가르쳐주려고 노력한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워했습니다.

공부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합니다. 제겐 저의 경력과 앞으로의 좋은 삶을 위한 준비가 단순히 사교적 만남을 갖거나 놀러다니는 것 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정말로 많은 위험을 감수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그런 만큼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제게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규리 (2014 탈북, 2014 한국 도착)

북한에 있을 때는 영어에 대해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 인생에서 외국인을 만날 거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외국인을 만나는 것보다 다른 행성에서 온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습니다. 비록 미국인을 증오하도록 교육을 받았고, 만날 경우 죽이라는 가르침도 받았지만, 어차피 자그마한 여자아이인 저를 두려워할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영어를 공부할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습니다. 저는 북한을 탈출하여 한국에 올 수 있었습니다. 지금 저는 너무 행복하고, 제 인생을 맘껏 즐기고 있습니다. 많은 기회가 제 앞에 있고, 훌륭한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에서 한가지 끔찍하게 큰 장애물이 있습니다. 바로 영어입니다.

대학에서 영어로 진행되는 수업은 최대한 피했습니다. 영어 때문에 너무나도 많은 어려움과 괴로움을 겪었습니다.

현재 저는 비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외국인을 만날 때마다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서 항상 미안했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일을 하는데요, 가끔 영어를 하는 분들이 오면 문서나 정보를 수집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참 싫은 경험이고 매번 마음이 울적해집니다. 번역 프로그램을 사용해도 신뢰는 안 가고, 제가 힘들어하면 동료들이 분명 비웃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제가 외국인 손님과 일을 잘 처리하는지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잘 압니다. 병원에서 저는 낮은 직급에 있습니다. 이렇게 낮은 영어실력으로 정규직으로 채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영어 외에 적응해 나가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매 순간, 저는 저를 도와줄 준비가 되어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왔습니다. 병원에서 외국인 손님을 만나는 게 제 유일한 어려움이었습니다. 제 업무수행 능력에 영향을 미치니까요.

저는 여기에 있는 게 즐겁습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일하고 싶은 곳에서 일하고, 심지어 영어같은 것을 배울 기회가 정말 많습니다. 영어공부는 저의 시야를 전 세계로 넓혀주었습니다.

선생님들 중 일부는 저를 엄격하게 다루지 않으려고 하시는 데, 저는 엄격하게 다루는 것도 괜찮습니다. 한국어로 수업을 진행하면 더 쉽기는 하겠지만, 영어로만 하는 것만큼 효과적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면 일을 할 때도 보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선생님들과 1:1 대화를 하고 나면 외국인 손님이 내원을 해도 예전만큼 긴장되지 않습니다. 선생님들은 저와 병원에서의 상황을 가지고 1:1 롤플레이도 해주시거든요. 이렇게 계속 열심히 영어를 공부하면, 언젠가 외국인 손님이 와도 과연 내가 문서를 제대로 받아낼 수 있을까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환대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는 북한이탈주민글로벌교육센터(TNKR) 공동대표를 맡고 있으며, 2017년도 한사랑농촌문화재단의사회공익부분 특별상 수상자이자 ‘2017년을 빛낸 도전한국인 10 대상수상자입니다. 기사는 TNKR 이은구 공동대표가 한국어에서 영어로 번역한 탈북민 인터뷰 내용을 기반으로 작성되었음을 밝힙니다.

번역: 권영민 (Translated by: Youngmin Kwon and Eunkoo Lee)

Original Korea Times blog post: Female defectors speak out on English and adjustment to South 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