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홀로 걷던 길, 이제 동료들과 함께

나홀로 걷던 , 이제 동료들과 함께

케이시 라티그 주니어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김포행 대한항공 국내선 NAMC YS-11기가 북한공작원에 의해 하이재킹 당했다. 당일 오후 12시25분, 이륙한지 10분만의 일이었다. 승객 46명과 승무원 4명을 포함한 총 50명의 한국인들은 그렇게 북한으로 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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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당국은 납북피해자 중 승객 39명은 한국으로 송환하였으나, 나머지 11명은 억류했다. 납북 당시 문화방송(현MBC) 프로듀서였던 황원씨도 돌아오지 못한 11명 중 하나다. 그리고 지난 15년간, 황원씨의 아들 황인철씨는 북한 당국에 아버지를 돌려달라고 청원해 왔다. 최대한 북한을 도발하지 않으면서,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순수한 인도주의적인 측면에서 아버지의 납북 사건에 대한 인식 제고와 해결 촉구 노력을 균형 있게 진행해 온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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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한 역사적 사건의 당사자와 함께 일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올해 3월 20일, 나는 인철씨를 국제 자원봉사자 워크숍에서 처음 만나게 되었다. 한국인 동료와 내가 공동 창설한 TNKR(Teach North Korean Refugees: 탈북민에게 영어 가르치기)은 본래 탈북민들의 영어 실력 향상에 집중하는 비영리기구지만, 탈북민을 돕는 한국인이나 북한과 특수한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도 TNKR 영어수업의 문을 열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TNKR에서 자원봉사 원어민 강사들과 함께 영어를 공부할 학생으로서 인철씨를 초대했다. 향후 국제적으로 그의 메시지를 전달할 때 자유롭게 영어를 쓸 수 있도록, 그리고 북한 관련 이슈를 해결하는 특별 프로젝트에 참여하길 권했다. 그가 목표를 이루는 데 도움을 줄 자원봉사자 팀을 구성하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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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년 동안, 인철씨는 홀로 1인시위를 하고 국내외의 비영리기구 및 정부 등과 협의하여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을 그는 사재를 털어 진행해 왔다. 금전적인 문제가 발생하자 가족들은 그에게 포기할 것을 권했고, 이 때가 그에게는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기억조차 잘 안 나는 자신의 아버지. 이 세상마저 그를 잊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리고 올해 6월17일, 황인철씨는 자신의 가족 및 TNKR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15명의 사람들과 함께 임진각 자유의 다리에서 아버지의 송환을 호소하는 집회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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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적으로만 본다면 이 집회는 그다지 큰 성과가 아니었다. 15명만이 참여한 소규모 집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5년간 홀로 분투해 온 황인철씨에게는 이 15명이 마치 천군만마와 같았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단 한 명의 사람을 구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단순히 집회에 참석해주고 소액을 기부하는 그 작은 마음 하나 하나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다들 잘 모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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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집회에 참석자 중 가장 의외였던 이는 인철씨의 여동생 세실리아였다. 아버지 납북 당시 오빠 황인철씨가 2살이었고, 그녀는 태어난지 수 개월이 채 안된 어린 아기였다. 세실리아는 아버지를 되찾는 것을 포기했었고, 남은 가족이라도 그들의 삶을 살자고 오빠와 어머니를 설득해왔다고 이야기했다. 현재 영국에 거주하고 있는 세실리아는 지난 주 아프신 어머니를 보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번 집회에 참여해 오빠 곁에 있는 사람들이 정말로 믿을만한 사람들인지 확인할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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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3일, 우리가 처음 인철씨와 본격적으로 협력을 시작했을 때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있다. 페이스북에 올린 그 사진을 보고, 세실리아는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오빠가 만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년동안 오빠가 그렇게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오빠 혼자서 1인시위하는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그런 오빠의 모습을 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다. 그러나 지난 몇 달 동안은 독일, 한국, 스위스, 프랑스, 미국, 심지어 탈북민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사람들이 오빠를 도와 집회를 계획하고 일하며 함께 즐겁게 미소짓는 사진을 계속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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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17일 집회에서 내가 세실리아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마치 꿈만 같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내 곁에 있던 우리 인턴을 꼬집고 ‘꿈 아닙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세실리아는 자신의 오빠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고 했다. 아버지가 납북된 사실로부터 도피하려 했다는 그녀는 전 세계 자원봉사자들에게 둘러싸여 이렇게 말했다. ‘이제 손도, 팔도, 다리도, 목소리도 갖게 됐어요. 나약한 작은 소녀가 일어설 수 있게 됐어요.’

뉴스 언론에서는 간혹 인철씨 가족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렇게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음 이슈로 넘어가서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 인철씨 가족들은 장장 47년을 고통 속에 살았다. 기념일을 챙기고, 성공과 실패를 아버지 황원씨 없이 나누면서.

집회 며칠 후 세실리아와 만났을 때, 나는 그녀로부터 최고의 칭찬을 들었다. ‘당신은 타인의 눈에 보이지 않던 사람이 다시 보이도록 해주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서 도와줄 수 있는 사람과 연결해주죠. 그렇게 그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들리도록 해 줬어요. 그리고 이제 내 목소리도 세상에 들릴 수 있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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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들의 목소리가 계속 세상에 울려 퍼지도록 노력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황원씨의 송환을 촉구하는 온라인 청원서에 서명해 동참하고, 올 12월 개최할 또다른 집회에도 참여해줬으면 하고 기원한다. 돌아오는 12월 집회는 대한항공 NAMC YS-11기가 하이재킹 당한 1969년 12월11일을 기리는 행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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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시 라티그 주니어는 TNKR의 공동창립자이며 현재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이메일: CJL@post.harvard.edu.)